목포 홍어, 삼합을 맛보다.

2011. 11. 13. 15:28낙서장/우리들

전라도 사람들이 즐겨먹는 홍어 삭힌 홍어는 어떻게 유래가 된 걸까...
흑산도에서 홍어를 잡아 목포까지 배를타고 운송해 오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풍랑이라도 만나 시간이 지체되면 홍어는 자연히 삭혀진다는 설과, 푹 삭혀진 홍어를 누군가가 짚더미 위에 버렸다고 한다. 먹을게 귀했던 시절 거지가 그 홍어로 요기를 할까싶어 가지고 동굴로 들어갔는데 그걸본 동네사람들이 저렇게 썩은 음식을 먹어 탈이나서 죽을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며칠뒤 그 거지는 멀쩡하게 동네를 돌아 다니는 것을 보고 하나둘 사람들이 그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확한 유래는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삭힌 홍어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분명한 듯싶다. 우리친구들도 모두가 잘 먹는다. 인천마부는 목포에서 홍어를 사온 장본인이고 호박씨와 수원마부는 애탕도 즐기는 애호가다.
간잽이와 나는 조금덜 삭힌걸 먹는다.
 
목포가 홍어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은 1800년대로 추정된다고 한다.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는 지역적으로 나주 영산포보다는 목포가 흑산도와 거리상으로 가까워 덜 삭혀진 홍어를 맛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운반시간이 훨씬 더 길수밖에 없었던 옛날에는 흑산도에서 목포를 지나 나주 영산포까지 가면 홍어가 톡 쏘는 맛이 강하게끔 삭혀진 상태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목포보다는 나주 영산포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더 많이 삭혀서 톡 쏘는 맛이 강한 홍어를 즐긴다고 한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잔치에 홍어가 빠지는 법이 없고 현재는 수입산(칠레,아르헨티나)도 많지만 국산홍어가 가격이 비싸지만 맛이 훨씬 좋다고 한다. 홍어를 삭히는 방법은 계절마다 다르지만  며칠 동안 삭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온도의 높낮이에 따라 얼마만큼 삭히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 홍어를 삭히는 전통적인 방법은 홍어를 닦아서 지푸라기와 함께 독에 넣고 삭히는데, 추운 겨울에는 15일 정도 띄운다. 지푸라기를 넣는 이유는 지푸라기가 함유하고 있는 곰팡이균이 홍어를 발효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란다. 더운 여름날에는 단 이틀만에도 홍어가 삭혀진다. 보통은 일주일 정도 삭히는데 조금 더 톡 쏘는 강한 맛을 원하면 보름 정도 띄우기도 한다.
 
삭힌 홍어에서 톡 쏘는 냄새가 나는 이유는 홍어 속의 요소가 분해되어 암모니아가 발생되기 때문이다. 이 암모니아가 사람 몸 안에 들어가면 살균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삼합 홍탁은 홍어, 묵은지, 돼지고기를 차례로 얹어 세 가지 맛을 한 번에 즐기는 음식이다. 이에 탁주를 곁들이면 삼합 홍탁이 된다. 홍어를 알맞게 삭히고 돼지고기는 된장, 식초 등을 넣고 삶아 잡냄새를 없애고 썰어낸다. 이에 묵은지를 한 점 얹어서 한 입에 넣어 씹으면 홍어의 삭힌 맛과 돼지고기의 고소함에 묵은지가 간이 되어 입 안에서 오묘한 미각의 반란이 일어난다. 특히 탁주를 마시면 목이 칼칼해지는데 칼칼한 맛을 씻어낼 때도 삼합이 제격이다.
 
홍어 삼합과 탁주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우선, 홍어, 묵은지, 돼지고기를 한 입에 넣고 씹다가 입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코로 톡 쏘는 내음을 뿜어내는 것이다. 홍어는 씹을수록 톡 쏘는 맛이 그윽하게 퍼진다. 삼합을 채 삼키기 전에 탁주를 한 모금 마시며 다시 씹으면 그게 바로 삼합 홍탁 맛이다. [네이버 지식에서 발췌]

오늘(토요일)은 수원마부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광어회도 준비하고 간장게장에 맛깔스런 어리굴젓? 또 파김치와 추어탕도 끓여서 먹는 바람에 회는 한점도 못 먹었다. 일요일 하루종일 뽕을 빼고 오는건데 일요일에 스케줄도 있고 또 회사일로 심신이 지쳐있는 친구도 있어 그걸 못먹고 헤어졌다. 참 아깝다.

목포에서 사가지고 항아리에 볏짚을 넣고 삭혀서 신주단지 모시듯 들고온 오늘의 메인요리..참 정성도 갸륵하다.  

이름은 모르겠지만 김장속같은것도 장만하여 삼합 먹을때 얹어서 먹었다.  

홍탁의 탁주대신 막걸리도 있고..오리발과 다들 막걸리를 따라서 먹었지만 나는 짬뽕의 기억때문에 소주만 마셨다.  

온 집안에 홍어냄새다. 우리의 만년 주방장이 하나씩 꺼내어 썰고있다.  

묵은 깻잎에 홍어와 목살을넣고 마늘과 고추도 넣고 묵은지만 한조각 얹으면 된다. 묵은지는 간잽이댁이 가져오셔서 맛있게 먹었다.

저녁을 먹고 간잽이 댁이 친구들한테 선물을 돌렸다. 손수 만드신 앞치마하고 수세미를 선물 하셨다. 이렇게 받기만하고 살아서 늘 미안하다. 집에와서 보니 수세미에 이런 구절이 들어있다.

 

이 수세미에 사용한 실들은 진찌 100% 아크릴사로서 잘 아시겠지만 세제없이도 왠만한 설거지가 가능하며 세균이 번식할 수 없어 악취도 안나면서 오래 사용할 수 있답니다. 짜임에 구멍이 있어 걸어두실 수도 있어요. 보잘 것 없지만 고마우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드리고자 나름 정성들여 뜨개질 하였으니 알뜰히 잘 사용하시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선물 하신분의 마음을 헤아리고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그리고 늘 사용하는 옆지기와 딸래미 한테도 단디 일러 놓겠습니다.^^

거나하게 먹고나서 배도 꺼줄겸 부근의 수원화성을 찾았다. 저멀리 붉은조명이 성곽이다.

 

화성은 서쪽으로는 팔달산을 끼고 동쪽으로는 낮은 구릉의 평지를 따라 쌓은 평산성이다. 정조는 그의 아버지 장헌세자에 대한 효심에서 화성으로 수도를 옮길 계획을 세우고, 정조 18년(1794)에 시작하여 2년 뒤인 1796년에 완성하였다.
실학자인 유형원과 정약용이 성을 설계하고, 거중기 등의 신기재를 이용하여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쌓았다.
성벽은 서쪽의 팔달산 정상에서 길게 이어져 내려와 산세를 살려가며 쌓았는데 크게 타원을 그리면서 도시 중심부를 감싸는 형태를 띠고 있다.
성안의 부속시설물로는 화성행궁, 중포사, 내포사, 사직단들이 있었으나, 현재에는 행궁의 일부인 낙남헌만 남아있다.
특히 다른 성곽에서 찾아볼 수 없는 창룡문·장안문·화서문·팔달문의 4대문을 비롯한 각종 방어시설들과 돌과 벽돌을 섞어서 쌓은 점이 화성의 특징이라 하겠다.
화성은 쌓은 후 약 200여년이 흐르는 동안 성곽과 시설물이 무너지기도 하고 특히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파손되었는데, 1975년부터 보수,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효심에서 근본이 되어 당파정치 근절과 왕도정치의 실현 그리고 국방의 요새로 활용하기 위해 쌓은 화성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를 갖고 있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똑딱이라 그런지 야간에 찍은 사진은 화질이 좋지않지만 높게자란 억세와 어울리고 위로비추는 조명때문에 환상적인 분위기였다.

봉화대 

한바퀴는 다 못돌았지만 밤11시가 되니 성벽내부쪽의 조명이 꺼졌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낮에 한번 돌아보고 싶은 화성이다. 술들을 거나하게 마신지라 수원마부집으로 돌아와서 하루밤 보내고 아침에 추어탕먹고 다른 스케줄없이 헤어졌다.
음식장만한 수원마부댁 고생하셨고, 홍어 맛보인다고 목포에서 사와서 가지고 온 인천마부의 정성에 다시한번 감사감사~!! 덕분에 이제 꽤 친숙한 먹거리가 되었네...


그런빈대 또 없습니다.